‘양배추·상추 반 접시, 토마토·바나나·사과 반쪽씩, 삶은 은행 10개,
호박죽, 삶은 달걀, 우유 한 컵.’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78·영상의학·사진) 서울대의대
명예교수의 9일아침 식단이다. 남김 없이 비웠다.
생존 가능성 5% 미만의 말기암을 이긴 힘이 여기서 나온다.
그는 북청물장수 식단이라 부른다. 물을 길어주던 물장수가
단골집에서 주던 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데 빗댄 표현이다.
한 박사는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성공한 의사다.
혈관촬영과 중재(仲裁) 방사선학(초음파·CT 영상을 보면서
수술하지 않고 암과 혈관질환 등을 치료)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 교재가 부족한 시절 해부학 교실에
전기톱을 사주고 시체 두 구를 얻었다.
그걸 가로세로로 켜켜이 잘라 컴퓨터
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 사진과 대조한 해부학 책을 만들었다. 인기가 좋아 미국에서 출간했다.
그는 수재가 의사가 되는 세태에 일침을 놨다.
한 박사는 “아무리 울어도, 똥을 싸도 애를 좋아하는 사람이
소아과 의사가 돼야 하듯 의사는 인간성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머리”라고 강조한다.
한 박사는 의사로서 업적보다 암을 이긴 의사로 유명하다.
98년 찾아온 암은 그의 인생의 세 번째 위기였다.
첫 번째는 조실부모(8세 때 부친, 17세 때 모친 임종).
두 형의손에서 자랐다. 다음은 한국전쟁이다.
8년 난생처음 건강검진을 했는데 간에서 직경 14㎝의 커다란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
아찔했지만 “입원하게 방 잡으라”고 태연한 척 했다.
‘잘하면 3년 살겠지. 가면 가는 거지’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수술이 잘됐다. 두 달 뒤 추적 검사에서 대사건이 발생했다.
양쪽 폐로 암이 전이된 것이다. ‘정말 가는 구나. 6개월도 안 남았네….’
달수로 생존 기간을 따져야 했다. 하늘이 노랬다.
‘세 딸이야 시집가면 되지만 아내는 어떡하나.’ 별의별 생각이다 들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6주 후 암 세포가 줄어든 게 아닌가. 희망이 싹 텄다.
기를 쓰고 먹었다. 6개월 만에 암세포가 사라졌다.
당시 아내(김봉애·74)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사나흘간 치료법·음식 등을
수소문하기 바빴고 남편에게 충격을 줄까봐 숨어서 울었다고 한다.
한 박사는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싸움은 계속됐다.
2006년 7월 방광암이, 11월에는 간에 작은 암 덩어리가 발견됐지만 물리쳤다. 지금은 6개월마다 정기검사를 받는다.
말기암을 이긴 비결은 뭘까.
그는 “나도 몰라.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한 가지 짚이는 게 있다. 그는 약을 아주 싫어한다.
자신을 ‘약의 처녀지’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약발이 잘 들었을 거란다.
주치의인 서울대 의대 김노경 명예교수가 “의사 면허 반납하시죠”라며 면박을 줬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