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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와 구력재

두타 2011. 2. 25. 20:46

단종 유배길 한구간인 배재와 구력재를 가본다.

가는길에 엄정면의 문화재와 탁사정및 배론성지를 돌아봤다.

가본 유배길:귀래면 운남리-운남 저수지-뱃재(拜領), 또는 배치(拜峙)-화당리-운학동-구력재(운학재라고도 한다,해발 530 m)-구학리-신림.  배재와 구력재는 각각 충북과 강원의 경계가된다.

 

배재는신라 마지막왕의 전설도 있다.

신라 경순왕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황산사의 스님을 시켜 종을 치게 하였다. 경순왕은 지금의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에 가 있다가 종소리가 나면 미륵불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망국(亡國)의 왕으로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절이었다. 이 고개를 뱃재(拜領), 또 배치(拜峙)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이런일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손자... 문종의 아들.... 단종

세종-문종-단종까지는 장손, 즉 적장(嫡長)으로 이어져 내려갔지만 결국 代가 끊기고 만다.

세종의 작은아들,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

12살에 왕이 되었다가 15살에 쫓겨났고, 결국 17살에 귀양 보내져 사약을 받고 숨진 단종..

-17살이던 1457년 음력 6월(이면 삼복 무더위다) 22일 군졸 50명의 엄한 호위아래 노산군이 된 단종은 창덕궁을 떠난다.

(일부 기록은 16세이던 1456년이라하나 1456년에 사육신의 복위운동이 일어났고 다음해 귀양보내졌다가 사사되었다.)

7일만인 6월 28일에 유배지인 청령포에 도착하였다

 

- 출생 : 1441년(세종 23)에 세자(문종)과 세자빈(현덕왕후) 사이에서 출생

어머니는 난산으로 3일 만에 죽고, 할머니뻘인 세종 후궁 혜빈 양씨가 양육함

- 8 세 : 1448년(세종 30) 세손에 책봉됨. 조선왕실 최초의 왕세손임

- 10세 : 1450년(세종 32) 세종 승하, 문종 즉위. 단종은 왕세손에서 세자로 책봉됨

- 12세 : 1452년(문종 3) 문종 승하, 단종 즉위.

- 13세 : 1453년(단종 1) 10월, 수양대군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 안평대군 사사

- 14세 : 1454년(단종 2)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음 (정순왕후)

- 15세 : 1455년(세조 1) 6월, 수양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남 (재위 3년2개월)

- 16세 : 1456년(세조 2) 성삼문의 난(상왕 복위사건), 사육신 처형

- 17세 : 1457년(세조 3) 노산군으로 강봉, 청령포로 유배

금성대군 2차 단종 복위사건, 단종은 서인으로 강봉됨

12월, 사사후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엄홍도가 거두어 암장.

조선 임금 중 처음으로 국장을 치루지 않은 왕이 되었다.

암장된 60년 후 무덤을 겨우 찾았다. 그로부터 15년 후 그곳에 간단한 석물을 세웠다.

 

180년이나 지난 1698년(숙종24) 비로소 단종이란 묘호와 장릉이란 능호를 받고서 종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역사 앞에는 더구나 왕이 귀양갔던 이길을 가는 사람의 마음은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역사 앞에 숙연 해진다.

구학리에서는 남편을 따라 죽은 열녀비도 만났다.

 

               

                ↑ 보물16호

 

                ↑경종대왕 태실

 

 

 

                ↑운남 저수지

                 배재

                 배재에서는 옥녀봉및 오청산을 오를수 있는 리본들이 보인다.

                구력재(운학재)

 

 

 

 

 

 

                  탁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