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

전주이씨의 시조

두타 2012. 3. 22. 21:37

 

 전주이씨의 시조의 휘(諱)는 한(翰)이요, 호는 견성(甄城)이다. 신라의 사공(司空)벼슬을 지냈다.

배위(配位) 경주김씨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군윤(軍尹) 은의(殷義)의 딸이다.

연대 작가 미상의 <완산실록(完山實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야사(野史) 실록(實錄)에 의하면 우리 시조 사공공의 휘는 한이요, 자는 견성이시다. 공은 원래 중국에 살았었는데 하늘이 낸 성스런 인물로 남보다 총명하시고 재질도 뛰어나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15세에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는데 계모 주씨(朱氏)가 매우 사나웠으나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그래서 동요에 `오얏나무 밑에 반드시 왕기가 서려 있다'라고 하였다.

마침 배가(裵哥)에게 모략을 받아 바다를 건너 우리 나라로 들어오시니 그 때가 18 세였다. 이렇게 어리셨는데도 문장이 비범하고 성품이 인자하여 탁월한 재능과 더불어 기품이 널리 떨쳤다. 우리 나라로 오신 지 얼마 안되어 명성이 조정에까지 떨쳐 신라 문성왕(文聖王)이 사공에 임명하니 정치를 하신 지 1년만에 나라가 태평하여 온갖 벼슬아치들이 다 화합하고 온 백성이 모두 즐겼다. 그래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10세손 군윤(軍尹) 김은의(金殷義)의 딸로 아내를 삼게 하니 이분이 바로 경주김씨이다.'


 그리하여 우리 시조가 중국에서 왔다 하나 이는 매우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면 시조 사공공 한 할아버지의 생졸년은 언제인가? 전설에 전주 조경단에서 나왔다는 지석(誌石)이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어 내려오는데, 그 돌 앞면에 `천보십삼재 구척하(天寶十三載 九尺下)'라고 새겨져 있다.

이 지석이 정말로 시조할아버지의 장례 때 묻었다면 시조공의 졸년은 `천보 13년'이다. `천보'는 중국 당나 라 현종(玄宗)의 연호로 서기 742∼755년에 해당된다. 따라서 `천보 13년'은 서기 754년이요, 신라 경덕왕(景德王) 13년이다. 곧 지금부 터 1240여년 전이다. 이 지석대로라면 시조할아버지의 졸년은 서기 754년이다. 그러나 향년(享年)을 알 수 없으니 출생년은 알 길이 없 다. 그리고 지석이라고 하나 비기(秘淇)로 보인다.

 배위 경주김씨에 대하여도 안동김씨 또는 강릉김씨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히 경주김씨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