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주이씨 금성대군파

두타 2020. 4. 12. 18:51

제목: 정복규의 성씨칼럼

전주이씨 금성대군파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의 제6남이다. 그는 문장가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천성이 강직했다. 금성대군은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으로 귀양을 갔다. 그는 이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다시 단종 복위를 모의했다. 그러나 한 관노의 밀고에 의하여 체포된다. 결국 1457년 10월 사사(賜死)되고 만다.

 모반사건이 탄로 나자 주모자들은 물론 사방 10리 거리에 있는 세 살 이상의 양반 남자는 모조리 목을 베었다. 집은 모두 불태우고 헐어버렸다. 도호부(都護府)는 산산조각 내어 다른 지방에 복속시켰다. 사람 뿐 아니라 마을 자체를 없애버리는 잔인한 형벌이 내려진 것이다. 순흥면 죽계(竹溪) 마을은 그때 피로 물들어 지금도 `핏걸'이라 불리운다.

 순흥면 내죽리에는 금성대군의 사적인 금성단(錦城壇)이 있다. 상단은 금성대군, 좌단은 금성대군과 모의해서 단종 복위를 꾀했던 이보흠 부사, 우단은 연루되어 죽음을 당한 사림들의 위패를 모신 제례소이다. 이곳에서 해마다 봄, 가을에 향사하고 있다.

 순흥에는 또 감옥이 있다. 100평쯤 되는 터에 담장을 높이 쌓고 그 안에 우물처럼 동그랗게 담을 또 쌓았다. 그 속의 넓이는 3평쯤 되며, 음식을 넣어 주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그 좁은 돌담 안에서 금성대군은 갇혀 있다가 죽음을 맞았다. 충북 청원군 북이면 용계리 죽계서원(竹溪書院)에는 안평대군· 금성대군·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 이보흠 등 6위를 봉안하고 있다.

 한편 금성대군의 부인인 완산부부인 전주최씨는 1남을 두었다. 아들 이맹한은 소덕대부 함종군이다. 장증손자 이인(李仁)은 정의대부 덕천군, 차증손자 이의(李義)는 창선대부 홍양정, 셋째 증손 이예(李禮)는 소의대부 청리부정에 각각 봉해졌다.

< 성씨 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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